깔때기 전문가가 되다. 포르노에 빠지듯.

이베이에 다니던 시절, 야심 차게 시작했던 일본 시장 진출이 무참히 깨진 바 있다. 약 6개월에 걸쳐 모든 것을 걸고 준비하던 일은, 부사장이 프로젝트 예산을 다시 가져가 버린 단 하룻만에 박살이 났다.  러시아발 환율 폭탄이 문제였다.  수출팀이었던 관계로, 당시 제1 우선순위 국가인 러시아에서 터진 환율 폭탄은 전체 팀을 존폐 위기에까지 몰아세웠다.  즉, 나의 입장에서는 불가항력의 일이었고 어떻게 보면 쿨하게 훌훌 털어내도 되는…

신뢰를 얻는 법

지난 약 2개월은 미국에 온 이후 가장 바쁘게 보낸 기간 중에 하나이다.  매주 주말을 반납하고 주 7일 근무로 2개월을 보냈다.  주마등처럼 지나간 지난 2개월을 돌이켜 보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초이, 일단 숨 호흡 크게 한 번 하고 내 얘기 들어봐”라고 말하는 매니저, 급하게 최애 멤버들을 모아놓고 Task Force Team 피칭을 하던 회의실, 그리고 모두 “너와 함께라면!”이라고 말해줘…

들판에 누워있네

꽃이 가득한 들판이 아름다워서 벌러덩 누웠더니 하늘만 보이고 사진을 찍었더니 향기가 깜짝 놀라 날아가 버리네 아쉬운 마음에 꽃 하나 꺾어 보니 입가의 주름 마냥 늘어져 버리네   이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에게 주었더니 간장 종지 닮은 손에 살짝 올려놓고 행여 바람에 꽃잎이 날릴까 행여 꽃잎이 바람을 타고 날아갈까 입가의 미소 마냥 살며시 걸어가네   지나다가 그 아이 혹시라도 만나거든 수줍은 더벅머리 길게 한 번 쓰다듬어주소 조물조물 눅눅해진 꽃잎은 손과 발이 서툴러 그런 것이오…

꼰대 고백 (1): “내 스타일대로 해”

얼마 전 링크드인(linkedin.com)을 서핑하던 와중에 재미있는 한국의 한 중견 기업 구인 광고를 봤다.  부장급 자리다.  신기해서 스크린을 캡처를 해 놓았지만 익명성(?)을 위해 눈길을 끌었던 부분을 아래와 같이 직접 옮겨보았다. 필요 사항 – 온화하고 겸손하며 합리적인 성품과 리더십 – 부서 간 조율 능력 및 경청 – 그룹 조직 및 관계사 간 소통 능력 온화하고 겸손하며 합리적이어야 한다니.  경청해야 한다니!…

이상한 면접

돌이켜보면 국적을 막론하고 의외로 준비되지 않은 면접관이 꽤 있다.  얼마 전에 화제가 된 딜로이트 한국 인터뷰 후기에 영감(?)을 받고 내가 그동안 들었던 ‘재미있는’ 인터뷰 질문을 회상해 봤다.  ‘미국은 어떻고 한국은 어떻고’ 그런 식으로 일반화될까 봐 모두 그냥 한국말로 적었다. “태권도했네요.  발차기 한 번 해 보세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니, 그만두라고 했다) “놀게 생겼네요.  주로 뭐하고 노세요.”  (독서가…

내가 니 시다바리다 (3)

내가 니 시다바리다 (1) 내가 니 시다바리다 (2) 내가 니 시다바리다 (3) 이베이에서의 초창기는 어두웠다.  레벨도 낮았고 PM의 역할도 생각보다 한정되어 있었고, 자기 PR도 잘 못해 화려한 프로덕트를 맡지 못했다.  언제나 다른 PM이 진행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고 난 겉만 번지르르한 프로덕트만 맡아 무대 뒤에서 열심히 갈고닦았다.  묵묵히 밭을 가는 누렁이 소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프로덕트가 없다는 이유로 업무…

내가 니 시다바리다 (2)

내가 니 시다바리다 (1) 내가 니 시다바리다 (2) 내가 니 시다바리다 (3) 감정 조절에 실패했던 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나는 이베이에서 굉장히 낮은 레벨의 PM으로 시작했다.  당시 약 10년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대학 졸업 2년 차 정도로 입사했다.  (이건 물론 입사 후 시간이 좀 지난 뒤 안 사실이다.  상대방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나의 인도주의적인 협상 철학은 무슨.  그냥 나의 어이없고…

Debate, Disagree & Commit

지난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엔지니어 매니저, 엔지니어 두 명, 디자이너, 그리고 콘텐츠 전략 담당과 함께 두 시간 가까이 깊은 논쟁에 빠졌다.  결국 엔지니어 한 명이 끝까지 반대하다가 결론을 못 낸 채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금요일 늦은 저녁에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팀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그 엔지니어와 엔지니어 매니저에게 고맙다는 이메일을 따로 썼다.  두 가지가 고마웠다.  물러서지 않고 논쟁했다는 점.  그리고 끝까지 동의하진…

압도해버렸다

1월은 지난 반기에 대해 서로 평가를 하는 달이다.   일을 잘 한 친구가 있으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뭔가 불만이 있으면 털어놓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사내 평가 시스템에 글로 써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데, 나는 굳이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내 딴에는) 대화를 하는 편이다. 넌 정말 최고야, 이런 좋은 얘기는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해야 짜릿하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야 더더욱 만나서 두…

이 산이 아니네.

지도도 없이 산을 오른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그러면 당신은 가장 단기간에 오를 수 있는 길로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옆 산이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더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 일단 다시 내려오거나 아니면 낮은 산을 계속 올라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이미 한계가 정해진 정상을 향해. 커리어가 이와 비슷하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어느덧, 아…

삽질의 완성 – 포옹 (3)

삽질의 시작 – 노인 (1) 삽질의 절정 – 담판 (2) 삽질의 완성 – 포옹 (3) 스탠퍼드와의 담판에서 처절하게 패했지만, 신이 틀어 주신 채널로 인해 그날은 흥분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낮은 GRE 점수가 낙방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 학생 선발 시 GRE에만 너무 의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제의 그 다큐멘터리는 나의 희망이 되었다….

삽질의 절정 – 담판 (2)

삽질의 시작 – 노인 (1) 삽질의 절정 – 담판 (2) 삽질의 완성 – 포옹 (3) 영화 같은 노인과의 만남 이후, 나는 바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워싱턴 주 내륙 지방은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은 3월 중하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까지도 난, 부모님은 물론 당시 한국에 있던 여자 친구 및 지인들 모두와 연락 두절된 상태였다.  아마 그렇게 동네 바 한구석에 찌그러져 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