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 시다바리다 (1)


나는 PM이다.

Product Manager의 약자다.

그게 뭐라면, 답이 길어진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미국에서 짧은 시간 (3년 반 정도) 관찰한 바, PM의 역할 및 정의는 회사마다, 팀마다, 보스마다, 아니면 시기마다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베이에서 처음 MBA 인턴으로서, 즉 난생 처음으로 미국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역시 나는 PM이었다.  패션 팀 PM.  이 때 받았던 좋은 인상으로, 1년 후 나는 풀타임 PM (전자제품 팀)으로 다시 이베이로 돌아왔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선택해서 온 것 같은데, 사실 이베이 말고 나를 받아준 곳은 없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그리고 인턴 기간과는 전혀 다른 고통의 시간이 시작됐다.  패션 팀이었냐, 전자제품 팀이었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 인정 받는 아리따운 금발 미녀가 보스였냐, 아부에 능한 털복숭이 아저씨가 보스였냐의 차이일 수도 있다.  쓰면 쓸 수록 그게 바로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인정하면 이 글을 통째로 접어야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차이는 PM의 역할의 차이였다.

이베이는—그것이 중계든 자기 물건이든 어쨌든—물건을 팔아서 이익을 내는 회사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는 물건을 많이 파는 사람이 장땡이다.  그런 의미에서, 엔지니어와 함께 일하면서 주로 사이트에 새로운 기능을 런치하거나 기존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PM은, 상대적으로—정확히 말하자면, 생각했던 것보다—회사 내에서 힘이 좀 약했다.  아무리 기능이 좋고 멋있고 죽인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보통 A/B 테스트에 4주가 걸렸다) 물건이 안 팔리면, 그래서 돈을 못 벌면, 뭐 인정 못 받는다.  장기적인 어쩌고 뭐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물론 이베이 내에서도 팀에 따라 다르다.)

전자제품 팀에 있을 때 가장 파워맨은 큰 셀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었다.  주로 마케팅, 프로덕트 마케팅, 세일즈 등등 이런 IT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을 이베이에서는 BU (Business Unit)라고 부르는데, 얘네들이 진짜 파워홀더였다.  내가 정의하는 파워란 건 별거 없다.  한 해의 로드맵 (1년 계획)을 주무르고, 여러 일이 겹쳤을 때 그것의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파워 홀더다.  패션 팀에서 일할 땐 PM Director가 시장조사를 하고, 고객 리써치도 주도하고, 전략을 세우고, 계획을 총괄했으며, 엔지니어와 함께 “프로덕트”를 개발했지만, 전자제품 팀으로 오니 그 모든 건 BU로 부터 시작됐다.  PM은 그 계획을 “받아서” Product Plan으로 승화시키고, 엔지니어의 동의를 얻은 후, BU를 행복하게 (아니면 열받게) 해준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BU: “자, 사이트를 분석해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고 싶은 전화기 모델도 모른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PM: “넵!  그러면 전화기 Finder 이런 기능을 만들면 어떨깝쇼.”

BU: “브라보.”

그나마도 PM 중에 직급이 높으면 그래도 BU께서 로드맵 짜시는데 옆에서 부채질이라도 해드리겠건만, 나 같은 경우는 안 그래도 억울하게 다른 MBA 졸업자들보다 한 계급 낮게 들어온 주제에 도저히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처음 6개월은 배너나 만들고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우울하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일들이 너무 단순해서 오후 두 시면 일이 끝났고, 그러고 나면 우울 게이지가 더욱 상승해서 집에 돌아와 매일 와인 한 병씩 비웠다.  와인,하면 멋있을 것 같지만 삼천원짜리 싸구려 와인이다.  마시는 사람 입장에선 포도색 깡쏘주라고 하면 느낌이 비슷하려나.  그 때 늦은밤 혼자 술마시며 즐겨 시청하던 해피투게더의 유재석씨가 나의 술친구였고, 박미선씨가 나의 누나였다.

유세윤씨나 이수근씨가 방송에서 눈시울이라도 붉히면 나도 훌쩍댔다.  뭐 그런 식이었다.  딱히 슬픈 일은 없는데 틈만 나면 멜로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울어댔다.  힘든 걸로치면 예전에 사업할 때가 백 배는 더 힘들었는데, 그때도 울진 않았는데, 이상했다.  눈물샘이 성감대보다 더 민감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심수봉씨의 백만송이 장미를 듣고 운 적도 있다.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에서 터졌다.

아무튼 이런 다이나믹을 깨닫는데 6개월 걸렸고, 다른 팀 (해외사업 팀) BU로 옮기기 까지 다시 6개월이 걸렸다.  그 때 같이 일했던 몇몇은 아직도 좋은 친구로 남아 있지만, 전반적으로 나에게는 정말 우울했던 기억이 많다.

그런 기억으로 인해 사실, 페이스북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 그 자리가 PM이란 걸 알게 되고는 좀 망설였다.

쓰다보니 (감정이 북받쳐서) 분량 조절 실패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음에.

* * * * *

사실 이 글은 2014년 12월 8일, 약 4년 전 그러니까 페이스북에 입사한지 약 6개월 됐을 때 쓴 글이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당연히 이미 까먹었고 기억 난다고 해도 이어갈 생각은 없다.  다만, 블로그를 써보자,라고 마음만 먹고 정작 뭘 써야할 지 몰라서 난감한 지금 복사해서 붙이기에는 딱 적합한 글인 것 같았다.

아직도 PM이니까.

역할은 좀 다르지만 (아마 그 다른 역할에 대해 쓰고 싶었나보다,하고 어렴풋이 짐작만 한다) 여전히 삼천원짜리 와인을 비우는 속도도 비슷하고 아부에 능한 털복숭이 아저씨들은 싫다.  달라진게 있다면 해피투게더가 아니라 수미네 반찬을 즐겨본다는 정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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