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 #1

2012년 겨울이었다.  이듬해 계획을 짜던 중, 나의 보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당시 나의 보스는 프랑스 출신의 아름다운 금발 여인이었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  이름은 실비아라고 하자.  불란서 악센트가 촉촉하게 남아 있는, 절세미녀까지는 아니지만 만약 젊었더라면 반했을 것 같은, 그런 귀풍이 있으면서도 장난기 있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나에게 여러모로 은인이다.

이베이 초반, 다른 팀에서 낮은 레벨에 평가도 엉망으로 받으면서 적응 못하고 있을 때 앞뒤 안보고 나를 자신의 팀으로 뽑아준 사람이기도 하고, 이후 여러모로 앞장서서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던 나의 열렬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머리만 금발이지 소피마르소를 많이 닮았다. (사진은 진짜 소피마르소)

2013년을 앞두고 나는 좀 더 공격적으로 뭔가 도전해보고 싶었고, 고심 끝에 실비아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실비아는 안 그래도 2013년 나의 개인 목표 중에 약 20%를 “새로운 기회 물색”에 둘 생각이었다,면서 반겼다.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2013년 초 나는 나의 포부를 실비아에게 말했다.  바로 일본 시장 개척이었다.

Pitching을 하다!

해외사업팀이지만 러시아와 남중미에만 초점을 맞출 뿐,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실비아는 나에게 아이디어 개발에 6개월을 줬다.  신바람이 난 나는 일본 시장 분석을 마치고 그에 맞춰 상반기 일본 특화 마케팅 계획을 짰으며, 페이팔 Japan 및 소프트뱅크, 야후 Japan 등 여러 업체와 컨택해 협력 동의를 얻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팀 내 사람들에게 돌려가며 여러번 pitch했다.  똑같은 내용으로 약 18번 정도는 한 것 같다.  이 모든 것에 단 2개월이 걸렸다.

당시 일본 시장 진출 제안서 표지

결국 회사에게서 2십만불의 초기 마케팅 예산을 받아냈다.  페이팔 등 그동안 연락 했던 모든 팀이 만세를 외쳤고, 받은 예산은 6월에 다 소진하기로 페이팔 Japan 등의 협력업체와 협의를 끝냈다.  나는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나만의 시장을 개척한다는 점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준비를 마쳤을 때쯤 일이 터졌다.

러시아발 폭탄이 터지다.

팀의 제 1 순위인 러시아 시장이 환율 폭탄에 맞은 것이다.  이런 해외 사업의 가장 큰 불안 요소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환율 1% 변동이 매출에 1.5% 정도의 영향을 미친 것으로 기억난다.  연초 대비 환율이 10% 가까이 올라간 시점이었으니, 매출로 치면 15%가 증발한 셈이다.  난리가 날만 하다.  그렇게 러시아 시장에 불이 나면서 실비아의 보스인 VP (부사장)가 일본시장에 배정됐던 2십만불을 그대로 빼앗아 갔다.  VP에게는 단 한 마디도 직접 들은 바 없었다.  다만 마케팅 개시 단 일주일을 남기고 예산을 빼았겼을 뿐이다.  망연자실 할 시간도 없었다.  모든 것을 현지에서 준비하고 있던 페이팔 Japan의 Head에게 급하게 연락을 남겼고, 실비아에게도 부탁해서 양해의 전화 통화를 부탁했다.

목소리로도 그렇게 굽신 할 수 있다는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꼈다.

그 후 러시아에서 열린 패션쇼. 우리팀은 러시아에(만) 목숨 걸었었고, 난 그게 못마땅했었다.

결국 일본 시장은 그렇게 날아갔고, 나의 일도 날아갔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 일의 20%가 날아간 것이고, 또 다른 시장 또는 기회를 물색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김이 샜던 것은 분명하다.  사무실 안에서도 뜻하지 않게 많이 알려지게 된 일이라, 위로도 많이 받았다.

어차피 지난 일이지만, 이 때 잠시 방황한 후에 다시 눈에 불을 키고 덤빈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베이 사이트의 Buying Funnel Analysis다. 즉 사람들이 들어오는 경로를 분석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일이었고, 이 일은 후에 나의 signature 분야가 된다.  퇴사할 때 선물로 커다란 깔때기 (Funnel)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

아무튼 그렇게 김 샌 이야기가 새옹지마인 이유는, 불과 1년 만에 내가 페이스북으로부터 연락을 받게된 이유가 이 실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이 틀어지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LinkedIn에 바로 이 일본시장 개척을 위한 노력을 한 줄 쓰는 일이었다.  과거형으로 안 쓰고 현재형으로 쓴 것은 내 나름의 반항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페이스북 리쿠르터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이 한 줄로 인해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페이스북 일본팀 PM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후인 지금, 난 페이스북으로 옮겨와 일하고 있고, 러시아에 집중하던 이베이의 그 팀은 30% 이상이 레이오프 (lay-off)되어 풍비박산 났다.  물론 페이스북으로 옮겨온 것이 무조건 잘 된 일이라 하기 어렵고, 레이오프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만 하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지금의 모습과 처지도 언젠가, 심지어 1년 후, 바로 뒤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 뒤바뀐 모습 역시 누가 옳고 누가 나쁘다고 하랴.

결국엔 다 새옹지마.  즐거울 때 자중해 앞날을 준비하고, 힘들 때 결국 그 힘든 일이 좋은 무엇인가를 잉태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뿐이다.

정말 모든 것들이 빠르게 돌아가는 만큼, 실리콘밸리만큼 새옹지마란 말이 이렇게 날마다 피부로 느껴지는 곳도 없을 것이다.

* * * * *

이 글은 2015년 2월 초에 쓴 글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3년 반 전이다.  이 일 외에도 새옹지마와 같은 일들은 무궁무진했기 때문에, 아마도 제목을 “새옹지마 #1″로 했던 것 같다.  억울한데 신기한 일들을 더 많이 쏟아내고 싶었으려나.  흥분해서 침을 튀겨가며.

웬만해선 “이젠 기억이 안 나니 더 쓸말이 없다”고 말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실은 기억나는 모든 일들이 돌이켜보면 새옹지마다.  심지어는 지금 시킨 딸기 케이크가 너무 단 것도 나중에 애들에게 가져다 줄 간식거리가 생긴 일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아닌가?)

만약 이 블로그를 길게 이어나갈 수 있게 되면 더 써보고 싶다.  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고, 하지만 열심히 했다면 그 실패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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