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시작 – 노인 (1)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삽질 참 많이 하고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토끼를 닮은 생물 교생 선생님에게 데이트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면서 일본 고등학교 진학을 시도했던 일 (일본어로 된 주관식 시험지에 한글로 답을 썼다. 당연히 떨어졌다.), 한국 고등학교에서의 수많은 구타와 체벌 그리고 또 구타와 체벌, 수능 삼일 전 14시간을 오락실에서 보낸 일, 대학생활 초반 철거민을 위해 일하다 그만 둔 일, 그리고 학교 벤치에서 왕따로서 생활한 일, 그리고 얼마 안 가 대학도 그만 둔 일 (5학기 동안 4번 학사 경고를 먹었다.  두 번 먹고 심기일전 열심히 공부해서 1.75인가로 간신히 면고하고 다시 두 번.) 등.

그래도 지금의 얼굴에 깔린 두꺼운 철판의 기초공사는 아무래도 유학생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영어를 못하니 쇼핑 카트로 할머니를 들이받고는 너무 당황해서 Thank you를 연발하기도 했고, 교수님이 나에게 Say hello to 누구누구,라고 했는데 헬로만 알아듣고는 그 자리에서 교수님 안녕!했던 것은 애교다.  내 생애 (당시 기준) 가장 비참했던 딜은 졸업하기 직전에 발생했다.

오만의 콧대가 자라나다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을 너무 엉망진창으로 망쳐놨기 때문에, 나의 간절한 부탁에 부모님께서 어렵게 보내주신 유학생활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양심은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유학생활 마저 망치면 뭔가 어디가서 약을 하거나 포주를 하거나 등등 진실된 망나니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암울한 미래가 너무 선명하고 분명하게 그려져 더욱 발악했던 것 같다.

게다가 유학 길에 오르고 불과 몇 달 뒤 IMF가 터져, 주변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뭔가 캠퍼스 전반 한인 학생 사회에 불던 우울한 분위기 역시 “뭔가 열심히 해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마음을 자극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궁지에 몰려야 비로소 고양이도 앙,하고 물어뜯는 생쥐 근성이 생긴 것 같다.  한 푼이라도 아끼느라, 그 때 친해진 한 형님과는 점심에 컵라면 하나를 둘이서 나눠 먹고, 저녁 때는 밥 한솥에 주먹보다 작은 오징어 젓갈통 하나 달랑 꺼내놓고 며칠씩 핥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악착같이 3년을 보냈을 때쯤 놀랍게도 나는 (물론 전혀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시골 학교지만) 꽤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오만함이 스멀스멀 가슴 속에 싹트고 있었다.  나는 성적도 좋고 유학파니까 국가에서 데려갈꺼야,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살면서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 분에 겨워 흥분했던 것이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지만, 그런 오만함을 바탕으로 나는 어느새, 전공을 살려 경제학 박사과정으로 진학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렇게 마음 먹고 4학년 1학기를 GRE (Graduate Record Examination: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봐야하는 시험인데 시험이 너무 지랄 같아서 ‘지랄리’라고 불렀다) 공부에 쏟았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성적이 나오질 않았고, 그냥 별로 좋지 않은 성적으로 대학원에 지원했다.  그렇지만 오만함만은 잊지 않은 (그 당시의) 나는, 평소 동경했던 Stanford와 UC Berkeley를 비롯한 US News 랭킹 기준 초탑스쿨 6군데, 그리고 소위 ‘안전빵’이라고 생각한 하위 한 학교에 지원했다.  그 미국 전체 등수에도 등장하지 않던 시골학교에서!  그렇게 해놓고는 무작정 될 것이라고만 믿었던 것 같다.

노인을 만나다

드디어 봄이 되고 안전빵을 제외한 6개의 학교에서 결과를 받았다.  너무 긴장하고 기대해서 하루에도 몇 번 씩 우편함을 열었다 닫았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에는 합격통보를 우편으로 줬다) 결국 받아든 건 6통의 불합격 통지서였다.  그것도 한 번에 안 오고 일주일에 걸쳐 하루에 하나 꼴로 왔는데, 나중에는 우편함을 열어보는 순간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불합격인 경우 봉투가 얇다) 그 때 누군가 멀리서 나를 봤다면, 우체통을 열고 발악하고 있는 짐승 한 마리를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주일 내내 매일 비슷한 시각에 나와서 똑같은 모습으로 발악하는.

오만의 코가 하늘을 찌른 높이 만큼, 그것이 잘린 고통도 컸다.  당시에는 너무 충격이 커서, 3년 간 하루도 쉬지 않았던 태권도 클럽도 문을 닫았고, 수업도 다 빠졌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연락을 피했고, 당시 여자 친구와도 연락을 끊었다.  초저녁이면 동네 술집 바 구석에 구겨져 있었고, 점심 늦은 해가 방에 들어와야 깼다.  그렇게 한 달은 보낸 것 같다.  거품 가득한 맥주를 퍼마시면서 내 안의 거품을 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던, 정말 어린 가슴이 아렸던 날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와 같이 술집 바 구석에서 찌그러져 술을 퍼먹고 있는데, 한 노인이 접근해 말을 걸었다.

노인: “굉장히 우울해 보이는데 무슨 일 있는가.”

오만: “대학원 다 떨어졌는데, 솔직히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첫마디에 바로 이실직고한 건 너무도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했기 때문이려나.  귀찮으리라 예상했던 노인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아니 재밌었고, 대화가 무르익을 때 쯤 (즉, 마누라에 대한 불평이 나올 때쯤) 노인이 재밌는 이야기를 했다.

노인: “자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네.”

오만: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마 선생님이 취해서 그런 걸거에요.”

노인: “아닐세.  만약 내가 자네라면 떨어진 그 학교에 직접 가서 딜을 한 번 해 보겠네.”

오만: “하하.  선생님, 딜은 카지노에서 돈 딴 이후에 끊었습니다.”

노인: “아닐세. 이건 진심이라고.  믿거나 말거나 나는 이 학교 단과대학 Dean일세.  (한국말로 하면 단과대학장?)  만약 내가 입학처장이었다면 자네 같은 친구와의 딜은 심각하게 고려해 볼 것 같네.”

오만: “하하. 고맙습니다, 선생님.  단과대 Dean 받고 주지사 콜.”

술에 취해서인지, 노인의 행색이 수수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모든 걸 부정하고 싶던 마음에서인지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았다.  내가 너무 안 믿으니 내게 명함을 건넸는데, 그것마저 바로 주머니에 넣어버리고 일어 섰다.

노인: “우리 와이프가 다음에 또 출장 가면 그 때 또 여기서 보자고.”

그 말을 등으로 받고 집에 돌아와 곯아 떨어졌는데, 점심 때 일어나 혹시나 하고 명함을 보니, 어허허 이 노인네, 진짜 Dean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고 딜을 하면 버클리에 갈 수 있을 수도 있다,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 * * * *

윗글은 2016년 1월에 쓴 글이니 약 3년 전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던 17년 전의 난, 스탠포드의 경제학부 Dean을 독대했고 “you are foolish”라는 면박을 들었으며, 버클리 admin office에 쳐들어가 딜을 하기도 했다.  아직 눈도 녹지 않은 워싱턴 주에서 건너간 한 촌뜨기 동양인으로서,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햇살 아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스탠포드 학생들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문득 히키코모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 지난 글들은 모두 11월에서 1월 사이에 씌여져 있다.  나와 같은 의지 박약의 회사원에게 흔한 패턴이다.  대개 holiday 시즌이 시작하는 11월부터 시작해서 (그러니까 지금처럼) 1월까지, 회사가 조금 느슨해졌을 때 글을 끄적거리다가 1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현실에 얻어 맞고는 ‘펜’을 놓는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히로세 스즈처럼 생긴 여자아이가 “블로그 잘 읽고 있습니다.  새옹지마라는 건 너무 수동적이에요.”라고 말을 걸어온다면 비슷한 느낌이려나.  “아 그런가요”하고서는 바로 다음 역에서 내려 출근해야하기 때문이다.

치밀한 계획 없이 가슴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였던 삶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블로그를 1월 이후의 ‘현실’ 속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면—히로세 스즈처럼 생긴 아이도 다음 역에서 내린다면—더 많은 삽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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