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공개하다

아무리 남 눈치 안 보고 살아왔다고 말은 하지만, 솔직히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있다고.

특히 일할 때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가끔은 차가워 보여도 일처리만큼은 깔끔한 도시남.  그리고—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렸지만—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머리 속에 한 번쯤은 그려본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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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멋지고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다.  그것이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Image Source – fineartamerica.com)

이미지 메이킹이 많은 역할을 차지하는 이 곳에서 일하면서 더더욱 집착했다.  외국인 노동자라서 그랬으려나.

작은 실수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했고, 일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괜찮다고 잘 포장하려 했다.  영어 발음이 이상해서 남이 못 알아 들으면 등에 식은 땀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수신자가 가득한 이메일을 보낼 때는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몇 번이고 고민했다.  회사 생활이 두 배로 피곤했다.

내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건 회사 캠퍼스에 걸린 한 포스터의 글귀가 눈에 밟혔을 무렵이다.

Your accent implies that you can speak another language.  

풀어쓰면, 당신의 특이한 영어발음은 당신이 또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정도 되려나.

우연히 찍힌 사진 속의 내 모습이 의외로 멋져 보일 때 같았다.  몇 번이고 계속 쳐다봤다.  그래, 내가 사실은 그런 사람이라고.  무려 너희들은 잘 못하는 한국말이 유창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조금은 어이 없지만—자신감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영어 발음이 이상해서 남이 못 알아들으면, 내가 영어가 세 번째 언어라서 그래,라고 굳이 콕 찝어서 상기시켰다.  (일본어는 야매떼 밖에 모름에도 불구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시작했고 (너무 자신 있어서 상대방이 더 미안해한다,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서), 일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그렇다고 널리 공표했다. 어떤 점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그런 피드백을 받았으니 이런 점을 고치려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누가 그렇다고 하기 이전에 내가 뭘 잘못했고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나의 약점 (vulnerability)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평가, 내가 마주하게 되는 일의 난이도, 그리고 팀원과의 관계가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더 나은 방향으로.

약점을 적극적으로 공개했을 때 달라진 점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1. 역설적으로, 리더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약점 공개는 자신감 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인지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약점을 공개하는 모습은 자신감을 가장 역설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잘못된 일을 내 탓으로 돌리는 모습은 그 일의 리더가 바로 나,라고 선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이다.

2. 더 많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약점 공개는 더 많은 피드백을 향한 나의 초대장이다.

일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남들은 다 아는 (그래서 수군대는) 내 잘못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가능한 한 빠르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강해보이는 사람일 수록, 남이 봤을 때 철벽이 높아 보여서 피드백을 주기 망설여진다.  약점을 공개하는 사람은 그리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사람은, 왠지 나의 피드백을 잘 받아줄 것 같아서 더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된다.

3. 팀웍이 강해진다 (또는 강해졌다고 느끼게 된다)

약점 공개는 팀웍을 더 공고히 하는 접착제가 된다.

어떤 프로젝트에 피드백을 주는 행위는—그 수용 여부와 상관 없이—가장 소극적이면서도 나름 기여했다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최저 임계점이다.  이 부분을 거꾸로 이용하면, 피드백을 요구하고 받는 행위가 바로 팀원들이 팀의 일원으로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끔 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에 하나가 된다.

4. 개데끼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약점 공개는 개데끼 (asshole)를 구별할 수 있는 리트머스가 된다.

개데끼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커리어가 올라가면 갈 수록 주변 개데끼의 영악함 또한 올라가서 더더욱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영악한 개데끼들은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관찰하다가 확실할 때만 그 흉악함을 드러낸다.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그 이빨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주변에서 맴돈다.  그러나 약점을 노출하면 의외로 재빠르게 그 사람의 개데끼 지수를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The No Asshole Rule에 따라 멀리하면 된다.  어떻게든 멀리해야 한다.  특히 만약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 * * * *

새 팀에 들어와 2019년 상반기 계획을 짜는 일이 난관에 봉착한 바 있다.  새 팀이 워낙 문제가 많아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 고쳐야 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리더쉽팀 (보스들)에게 납득할 만한 계획을 보여줘야 했는데 일이 잘 안 풀렸다.  내가 주도하는 몇 번의 리뷰—높은 사람들과 우리 팀 수십 명이 모여 보고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잘 안 풀려, 팀원들에게 반성의 전체 메시지를 보냈는데 결정적으로 분위기를 반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 적이 있었다.  그 일부분을 여기 공개한다.  팀원들의 리액션은 “Italic”으로.

자랑 같지만—네, 사실 인정합니다 죄송합니다 (_ _)—무엇보다도 기록해두고 스스로 계속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  민망하다보니 말투가 굽신거리게 된 점 양해 바랍니다.

* * * * *

Four points of reflection;

1) Break-down communication: We are making a lot of changes in the existing framework.  The problem was that I was trying to revamp and communicate everything at once. This is creating more confusion than help, while I still could have done it in phases.

2) Do not communicate when not ready: There were a couple of reviews that I felt that we weren’t ready but did it anyway. Yesterday’s is a good example as we weren’t ready with the needs framework but I shared it in the screen. Although I am a believer of getting feedback earlier than later, there is clearly different lines of balance by different groups that I haven’t realized. i.e. Early to me could mean differently for the leadership team.

3) Spend more time with the leads: Just realized my 1:1 with xxx and yyy got expired for a couple of weeks, and I haven’t set up a regular 1:1 with zzz yet!  Totally dropped the ball here, and will fix it right away.

4) Ask and clarify: All of the feedback I brought up above (I shared some detailed feedback with the leadership) could have been resolved if I had asked earlier.

Will get only better!

By Choi

“Thank you Choi for your leadership and transparency!”

“Choi – You have been the most gracious and generous in: a. being transparent, b. being open about sharing/asking feedback during draft stages, c. working on things as a team. I think you should continue doing all that. So thanks for that. Yes, it clearly depends on a group by group basis. … let us know as always when you need help.”

“Yes, thank you SO much! You’re clearing up a lot of strategic debt we’ve carried, and I really appreciate your leadership and introspection here.”

“Love that progress framework!! And thank you for your leadership and continued stamina because this stuff is really challenging to pave forward!!!”

“Yes, +1 to all said here! Thank you Choi for your leadership, for pulling together the many many many parts of this, for your gracious and collaborative approach, for keeping calm in the storm and helping everyone else to do the same, and for your transparency! And thank you all for being such great collaborative partners — I love how much this group feels like a *team* tackling things *together*!”

* * * * *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둘 째 딸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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