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도 ‘돈’이 최우선이어야

한 때 사회적 기업에 열광했었다.  돈도 벌고 사회적으로도 기여한다니, 사람으로 치면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도 좋은 오드리 햅번 같은 것이다. (세기의 연인이자 훌륭한 자선사업가였다)

보면 볼 수록 아름다운 사람이다.  (Image Source – The Edge)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비영리 단체와 비슷하되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장애인과 같은 취약 계층을 고용한다거나, 이윤의 어느 정도를 사회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등의 여러 조건이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 받으면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도 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약 10년 전 온라인 돼지 고기 판매 사업을 할 때이다.  남는 고기로 소시지를 만들어 근처 고아원에 나눠주면서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사업이 위기를 겪게 되면서, 더 이상 소시지를 남겨주지 못하면서, 고아원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적 기업들의 무거운 어깨를 조금이나마 몸소 겪어보게 되었다.  아팠다.

기업활동이란 정글 속에서 살아 남는 것.

사회적 목적이 기업의 목적이 되는 순간 그것은 빠르게 족쇄가 되어버린다.  나눔을 실천하느라 혹여 경쟁에서 뒤쳐지게 된다면 또는 기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동안 해왔던 좋은 일도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결국은 이윤을 최우선으로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건가,란 생각으로 회귀하면서 묘한 좌절감을 맛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기업가적 정체성—이라고 하기엔, 작은 구멍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던 나에게 지나치게 근사하지만, 막상 쓰고 나니 왠지 그대로 두고 싶어졌습니다 ;)—을 두고 정신적으로 방황한 적이 있다.

이 때 갑자기 마치 법륜 스님처럼 나타나 쉽고 명확한 깨달음을 무릎에 탁!하고 던져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Bar Surya라 불린 영국 런던의 “World’s First Eco Nightclub (세계 최초 친환경 나이트클럽)”이다.  이 클럽에는 자전거를 타고 오면 할인을 해준다거나 화장실 물을 재활용한다는 클리셰한 이야기에 더해 아주 멋진 마법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친환경 에너지를 자가발전 한다는 것이다.

power dance floor at eco-night club photo jpg
무대 아래 스프링이 달려 있어 춤을 추면 전기가 생산된다,니! (Image Source – Tree Hugger)

이 얘기를 하면 “아, 나도 비슷한 클럽을 본 적이 있어.  클럽 안에 사이클이 있어서 그걸로 자가발전을 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는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이트 클럽에 사이클을 타러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클럽에는 춤 추고 즐기러 간다.  그런데 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록, 사람들이 춤을 더 출 수록, 더 많이 취해 있을 수록, 부비부비가 더욱 화끈해질 수록!  이윤과 함께 생산되는 친환경 에너지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즉,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노력 자체가 저절로 사회적 환원으로 치환된다.

부비부비 장려가 친환경 에너지로 치환된다.  이윤을 쪼개 나눌 필요가 없다.  고용해야 하는 사람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세팅’만 해놓고 나면 기업가 본연의 모습, 즉 이윤을 극대화하고 재투자해 성장하는 데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임팩트를 늘려가는 것이다.

이 나이트 클럽은 그렇게 사업이 번창하면 남는 에너지를 동네에 나눠줄 계획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 전기세 대신에 춤이나 한 판 땡기러 갈까,라는 말이 나올 판이다.

결국 나의 문제는 이윤 추구 자체를 맹목적인 색안경을 통해 바라본 것.  그 지극히 본능적인 욕구 자체를 탓할 것이 아니었다.  소싯적 방황은 그것을 현명하게 활용할 방법을 몰랐던 무지의 탓이었다.  (‘본능적 욕구’를 활용하는 멋진 예는 여기 또 있다—빌 게이츠: 똥을 에너지로)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은, 먼저 달아 놓고 활동하는 ‘간판’ 같은 것이 아니라 기업 활동의 내용에 따라 세간이 내려주는 ‘상장’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 정체성은, 목적이 아니라 이윤 추구의 결과여야 한다.

그렇게 건강한 기업 본연의 모습, 고객을 위한 경쟁과 성장에 충실할 수 있을 때 더욱 강한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다.

* * * * *

이 나이트 클럽은 사실 오래된 이야기이다.  2008년 즈음에 오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조금은 극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가 망했다.  에너지 생성이 생각보다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던 모양이다.  물론 사업 망하는데 이유가 한 두가지만 있으랴.  (‘수질’이 안 좋았을 가능성도…)  다만 이 클럽이 망했다고 해서, 이윤 추구 자체가 사회적 환원으로 치환되는 사회적 기업 모델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길 바란다.

* * * * *

물론 이런 생각과는 상관 없이 잘 돌아가는 훌륭한 사회적 기업이 많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응원한다.  이것은 더 많은 기업이 사회적으로 이로운 기업이 되길 바라며 생각한, 조금 다른 접근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 * * * *

오드리 햅번의 아름다운 박애주의를 기리는 UNICEF의 영상이다.

“A life lived for others is never wasted.”

인간으로서 기업가로서 회사원으로서 그냥 한 마리 동물로서 부족한 게 많고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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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이 목적이 아닌 결과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윤을 추구하지 않아서 자립이 불가능한 사회적 기업은 이미 사회적 기업이기 보다는 사회적 부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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