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완성 – 포옹 (3)


스탠퍼드와의 담판에서 처절하게 패했지만, 신이 틀어 주신 채널로 인해 그날은 흥분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낮은 GRE 점수가 낙방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 학생 선발 시 GRE에만 너무 의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제의 그 다큐멘터리는 나의 희망이 되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버클리 입학사정관의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도 곧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아마 어제부터 나아졌을 거야.  아니면 오늘부터 나아질 거야.  버클리는 훌륭한 학교니까 이미 나아졌을 수도 있어.  나 같은 사람을 테스트 케이스로 실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알람시계가 울리기 몇 분 전, 밤새 일어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는 느낌으로 일어났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한 것은 아직 차가운 아침 이슬 냄새가 남아있는 이른 시각이어서 바로 입학사정관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찾아가지 못했다.  마음이야 이미 새벽부터 찾아가서 청산유수와 같은 말로 살아온 날들에 이야기하고 그래 바로 너 같은 학생을 찾고 있었어 그러면서 멋있게 악수하며 합격통지서를 그 자리에서 몇 번씩이나 인쇄했지만.  현실에서는 한없이 소심한 한량이었다.  전날 스탠퍼드에서 맞은 타격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학교 앞 (Telegraph Ave)에 있는 노점상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점을 봐주는 노파와 이야기도 해보고 언젠가 여행 왔을 때 알게 된 피자 가게에도 들르고, 그렇게 똥 마려운 개처럼 어쩔 줄 모르며 서성거렸다.  머릿속으로는 ‘작전’을 짠다고 했지만 사실 별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스탠퍼드에 쳐들어갈 때와는 180도 다른 나였다.  마침내 어떻게든 용기를 짜내어 입학사정관 건물에 들어가다가도 아, 맞다! 하며 뭔가 잊은 척 다시 돌아 나오기도 했다.  자연스러웠을 거야,라고 자위하면서.

텔레그래프 애버뉴에는 재밌는 노점상이 많다.  좌판을 깔고 점을 봐주는 노파도 있다.
(Image Source – The Daily Californian)

드디어 만나다 – Round 2

그렇게 몇 시간이고 헤매다 결국 입학사정관을 만난 건 오후 두 세시쯤이었다.  스탠퍼드 때와는 달리 입학처장을 바로 찾아가지 않고 입학사정관 중 한 명을 먼저 찾아갔다.  이런저런 질문에 친절하게 이메일로 답장을 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로라(였다고 하자,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의 푸짐한 인상의 아주머니였다.  약간 돋보기삘이 나는 안경을 쓰고 머리가 조금씩 희끗해지기 시작한 백인 아주머니였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이 따뜻한 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니, 일단 호감도가 무조건 올라갔다.  마음이 살짝 놓였다.  우리 편이 되어 줄 것 같았다.

“이번에 박사과정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습니다.  저번에 연락드렸던…”

“아! 어서 와요!”

어떻게 사람이 표정과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렇게 녹여버릴 수 있을까.  거짓말 조금 보태 대학원 떨어지길 잘했다, 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 자리에서 정대만처럼 무릎 꿇고 울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자리에 앉았다.

스탠퍼드 때 가슴이 떨렸다면 이번엔 눈망울이 떨렸다.

너무 유명한 짤이라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벌써 이미지를 잘라 붙여 저장하고 있었다. (Image source – 주간 경향...!?)

로라가 구석에서 차를 준비하는 동안 방을 둘러봤다.  꽤 넓은 방이었지만 책과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어 좁아 보였다.  적당한 혼란스러움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와는 근본이 다른 외계인처럼만 보이던 이 동네 모든 사람들과는 달리 (특히 스탠퍼드 캠퍼스를 거닐던 멋지고 아름다운 학생들), 로라는 나와 비슷한 면이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느껴졌다.

이제는 사라진 완행열차 비둘기호처럼, 느릿하지만 정감 있는 대화가 시작됐다.  날씨에서 출발해 한국 음식, 크리스마스 스웨터, 워싱턴 주의 시골 밀밭 이야기에 차례로 정차한 뒤 느릿느릿 목적지를 향해 미끄러져갔다.  전날 본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찍고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이윽고 로라가 말을 꺼냈다.

“이번에 상심이 컸을 거예요.  저도 많이 떨어져 봐서 알아요.”

“… (아, 저, 이건 눈물이 아니고…)”

“실은 우리도 GRE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특히 일부 국가의 학생들은 GRE 점수를 상당히 인위적인 방법으로, 때로는 불법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

“하지만 입학 심사 과정이란 것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지표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세요.”

“…”

“지원서도 보고 이렇게 잠시 얘기해보니, 학생도 만약 GRE가 높았더라면 상당한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어요.”

대단했다.  말로도 무술을 할 수 있다면 로라는 태극권의 고수임이 분명했다.  자신을 낮춰 공감대를 높이고, 구체적으로 동감해줘 나의 억울한 기분을 풀어줬다.  그러고 나서야 핵심적이고 듣기 괴로운 사실을, 마치 아기 주사 놓듯이,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전달했다.  그리고는 다시 희망적인 메시지로 따끔했던 바늘 자국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의 만남을 마치고 로라가 책상 옆으로 다가와 안아줬다.

무거운 철근이 되어 가슴을 짓누르던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비참함이 단번에 죽은 영혼이 되어 증발했다.  덩치는 내가 더 컸지만, 나는 분명 로라의 푹신한 품에 아기처럼 안겨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포옹이다.

귀환

그렇게 ‘비둘기호’에서 내려 복도를 걸으니, 정신이 맑아지면서 온몸의 세포 구석구석까지 느낄 수 있었다.  목덜미에 살짝 소름이 돋아 있었고, 겨드랑이에서 땀이 흘렀으며, 손가락 끝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랫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버클리 대학 어딘가의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있으니, 열심히 영역 표시를 하고 다니는 동네 개가 문득 생각이 났다.  개와 공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꼭 (아흡, 뿌앙!) 다시 오고 말 테다. 기다려라.

생각에 깊게 잠긴 채 영역 표시를 했다.
(Image source – Bored Panda)

따뜻한 포옹에 이어 본능에 가장 충실한 방법으로 영역 표시를 마치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후련해졌다.  로라의 여러 말 중 한 마디가 머릿속에 남았다.

만약 GRE가 높았더라면 상당한 기회가 있었을 거예요.

(난 듣고 싶은 말만 오래 기억한다.)

그 말 한마디로 신기하게도 모든 게 괜찮아졌다.  조금이라도 우울해질 것 같을 땐 그 한 마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그래 겨우 지랄리 하나 때문에 (시험이 ‘지랄’ 같아서 지알이 대신 지랄리라 불렀다) 떨어졌을 뿐이다.  그런 낮은 GRE 점수로는 이 보다 더 할 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다 했다.  이제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나의 컨트롤 하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 앞으로 펼쳐질 어떤 인생이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후회할 일은 없으니까.  오히려 기대감도 스멀스멀 생겼다.  내가 머릿속에서 그려본 적 없던 인생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생각이 이 정도까지 발전하니, 마침내 한국의 부모님께 전화드릴 용기가 생겼다.  호텔로 돌아와 국제전화 카드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예요.  오랜만에 죄송해요.  저 다 떨어졌어요.”

“응, 그렇구나.  저녁은 먹었니?”


이후 인생은 예상대로 확 달라졌다.  벤처기업에서 요요도 팔고 중국의 공장에서 발품을 팔기도 하고 동대문 시장에서 수도 없이 밤을 새우기도 했다.  평생 가본 적도 없던 전남 영광에서 돼지고기 사업을 했고, 이제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와 있다.  경제학도로서의 삶과 실제 내가 살아온 중구난방의 인생 중 무엇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후자는 재미있었다.

솔직히 ‘책 좀 읽어라’하면 만화책 아니면 소설책만 집어 들던 내가 경제학도라니.  시골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이 분명하다.  작은 우물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오로지 관성에 따라 내 인생을 계획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스탠퍼드 입학사정관과 로라에게 평생 큰 빚을 졌다.  큰일 날 뻔했다.

지금은 스탠퍼드나 버클리 포함 하버드, 프린스턴, 북경 대학 등 세계 유수의 대학 출신들과 섞여 일한다.  물론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나보다 뛰어나고 똑똑하다.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일도 잘하고 성숙하다.  나보다 나은 인류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미국의 입학 심사 시스템은 아주 정확하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나를 걸러냈으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스탠퍼드나 버클리 출신 동료들은 어느 정도 친해지면, 회식을 하거나 할 때 그 정신 나간 딜에 대해 얘기해준다.  그러면 한마디로 자지러진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괴감을 느낄 만도 하지만, 아직도 얘기를 할 때마다 오히려 내가 후련하다.  로라와 포옹을 끝내고 막 돌아섰을 때처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록 하얗게 불태우고 나면, 후련하다.  그냥 받아들이고 다시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게 된다.  좀 더 할 걸, 이란 생각이 들질 않으니 편하다.  현재에 충실함으로써,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주어지더라도 별 미련 없이 미래의 현재에 충실할 수 있다.  나의 오늘의 최선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함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한 번에 얻어지지 않는다.  다만 결과가 어떻게 되든, 미래의 내가 미래의 현재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선물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 하얗게 불태워야 한다.

그렇게 사는 건가 보다 삶은, 하고 소싯적 삽질을 돌이켜보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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