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지난 반기에 대해 서로 평가를 하는 달이다. 일을 잘 한 친구가 있으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뭔가 불만이 있으면 털어놓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사내 평가 시스템에 글로 써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데, 나는 굳이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내 딴에는) 대화를 하는 편이다.
넌 정말 최고야, 이런 좋은 얘기는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해야 짜릿하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야 더더욱 만나서 두 손 마주 잡고 듣고 싶다. 반면에 좀 가혹한 피드백을 줘야 할 때도, 의외로 만나서 하는 게 사실 더 쉽다. 글로만 전달하고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는, 말로 하는 편이 훨씬 속 시원하다. (물론 하기 전에는 아무래도 긴장된다. 해 놓고 나면 시원하다.) 내가 피드백을 받을 때도 직접 듣는 게 좋다. 대화를 통해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지난주 팀원 한 명과 피드백의 시간을 가졌다. 나이가 나보다 살짝 더 많은 인도 아저씨인데, 같은 매니저를 모시고 있다. 농담 센스도 서로 비슷해서 (결국엔 서로 아재 개그지만) 꽤 즐겁게 같이 일하는 동료이다. 페이스북에 온 지는 얼마 안 되어 피드백 문화에는 아직 적응 중이다.
이 친구와 만나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줬다. 대부분이 좋았다. 실제로도 일을 잘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 아주 깊이 있게 칭찬해줬다. 이 친구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가 그 모든 것을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해했다. 그렇게 약 20분을 칭찬해 주고, 이런저런 부분이 바뀌면 더욱 훌륭해질 거야,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나니 시간이 다 지났다.
원래는 나도 피드백을 듣고 싶지만, 어차피 시간도 없고 이 친구는 어차피 시스템을 통해 나에게 피드백을 줬기 때문에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갑자기 당황해하며 랩탑을 열고 아니야 나도 줄게, 하며 부산을 떠는 게 아닌가. 어차피 오늘 저녁에 시스템이 열리면 네가 쓴 것을 나도 읽을 수 있으니 괜찮다는 것을 굳이 막으며 기어코 자기가 쓴 부분을 읽었다. 미적지근하지만 대체로 초이와 같이 일할 수 있어서 희망적이다, 뭐 그런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고맙다,는 말을 뒤로하고 퇴근 후 시스템을 열었을 때 비로소 이 친구가 왜 그리 마지막에 다급했는지 알게 됐다. 전체를 읽어보니 나에게 말로 해준 부분은 전체 피드백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나머지는 죄다 안 좋은 얘기뿐이었다. 아주 길게. 피드백만 읽으면 아니 누가 이런 병신을 PM으로 고용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당신에게 준 피드백과 그 퀄리티가 너무 달라서 갑자기 미안했으리라. 그러니 황급하게 좋은 부분을 조금이라도 직접 얘기해 주려고 한 것일 게다.
그러면 안 되지만 엄청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아니 그 반대인가. 아 이 아저씨 같은 편인 줄 알았더니 뒤통수 제대로 한 방 맞았다. 물론 피드백 나쁘다고 해서 적군은 아니지만, 지난 반기 내내 입으로는 그렇게 칭찬과 감탄을 달고 살더니, 내가 PM으로 오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하더니!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다고 찾아갈 일도 없고, 소주 한 잔 할 것도 아니어서 그냥 내가 압도한 걸로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누가누가 상대방 칭찬을 더 잘하나 대결에서 압도하기.
누가누가 더 병신 같나, 로 압도하기.
이겼는데 무릎 끌어안고 숨고 싶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