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 시다바리다 (3)


이베이에서의 초창기는 어두웠다.  레벨도 낮았고 PM의 역할도 생각보다 한정되어 있었고, 자기 PR도 잘 못해 화려한 프로덕트를 맡지 못했다.  언제나 다른 PM이 진행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고 난 겉만 번지르르한 프로덕트만 맡아 무대 뒤에서 열심히 갈고닦았다.  묵묵히 밭을 가는 누렁이 소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프로덕트가 없다는 이유로 업무 평가를 평균 이하로 받았다.  5점 만점에 항상 2점이었다.

농사 열심히 지어주는 건 고마운데 별로 뭐,라고 업무 평가서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축 처진 내 어깨 위로 팔을 둘러댄 채 건방진 말투로.  그러면 어깨를 감은 그 팔을 뒤로 꺾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누르며 한마디 하는 거다.

“그럼 제발 좀 알려주세요,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그런 심정이었다.  자신감은 늙은 농부의 허리처럼 굽었고, 남들이 출시 한 프로덕트 따위 그냥 내버려 둬서 망하게 둘 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했다.  착하고 열심히 하지만 그리 유능하지는 않은 PM으로 이미지가 굳어가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렇게 헤매던 와중 천사처럼 나타난 은인, 실비아에 의해 발탁되어 드디어 지긋지긋한 PM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약 3개월 간 여러 번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자세한 이직 이야기는 다음에.)  그토록 부러워했던 파워 홀더, BU (Business Unit)가 될 수 있어 기뻤다.  아부에 능한 털북숭이 아저씨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어 너무 행복했고, 무엇보다도 실비아가 나를 진급시키면서 데려간 덕분에 더 큰 일을 맡게 된 것이 기뻤다.  영주권 역시 원래대로 EB-2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팀에 가자마자 화려한 일에만 몰두한 것은 물론이다.  PM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대 뒤’로 갈 필요도 없었다.  지긋지긋한 농촌을 떠나 도시의 화려함만을 즐겼다.

그렇게 2년 여가 지나고 페이스북 인사부에서 연락이 왔을 때 전화를 끊어버린 건, 그 역할이 PM이었기 때문이다.  리쿠르터가—그런 일에는 익숙했는지—다시 차분히 그 차이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인터뷰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실은 얼마나 중요한 것을 배운 것인지 평생 알지도 못한 채 지냈을 수도 있다.  아찔하다.

Fix of the week

여차저차 해서 페이스북에 Product Manager로 입사하고 나서도 사실 확신이 없었다.  그나마 이베이의 BU와 비슷한 역할인 것처럼 보인 Product Marketing Manager로 바로 바꿔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던 와중 처음으로 참석했던 Mark Zuckerberg의 Q&A에서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전 직원을 대상으로 Q&A 시간을 가진다.  지금은 회사가 많이 커져 장소를 옮겼지만 5년 전 당시의 분위기는 이 사진과 가장 비슷했다. (Image Source – Facebook)

일주일에 한 번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Q&A는 회사의 비전부터 직원 평가 시스템의 맹점, 혹은 월드컵을 회사 TV에서 틀어줄 것인지에 이르는 다양한 질문이 쏟아진다.  당시 전 세계에 퍼져있는 직원 다 모아도 약 4천 명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꽤 비형식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이야기가 많이 오갔고 직원들의 관심 또한 뜨거웠다.

처음 시작은 보통 Fix of the week이라는 세션으로 시작하는데, 버그를 해결하거나 누구도 거들떠 안 보던 프로덕트의 문제점을 발견해 고친 사람들이 나와 약 5분 간 발표를 하는 자리이다.  보통 엔지니어나 PM이 나와서 발표하는 자리인데, 내가 처음 참석한 그 날따라 저커버그가 엔지니어에게 마이크를 건네주기 전에 한 마디 덧붙였다.

오늘은 새로운 직원분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왜 이런 세션 (Fix of the week)으로 매주 Q&A을 시작하는지 먼저 설명하고 싶습니다.  회사가 급성장할 때는 보통 새로운 프로덕트를 만들고 출시하는 데에만 열중하게 됩니다.  Techcrunch와 같은 미디어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런 유혹에 빠져들게 되죠.

하지만 우리는 정말 훌륭한 프로덕트는 그것을 출시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갈고닦아 만들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기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프로덕트와 서비스는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작은 버그를 고치고 프로덕트 구석구석을 다시 다듬고 고치는 이 오랜 기간 동안의 단내 나는 작업을 통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일을 ‘무대 뒤’에서 묵묵히 해내는 진정한 영웅들을 조명하기 위한 자리.  그 드러나지 않은 진정한 가치를 우리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자리.  그것이 바로 Fix of the week의 의미입니다.

소름이 돋았다.  회사의 사장이 나서서 무대 뒤 농사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니.  건방지게 나를 타이르던 그 이베이 업무 평가서를 소환해다가 ‘들었냐, 들었냐고!’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부에 능한 털북숭이 아저씨 매니저를 데려다가 자 이제 다시 한번 나를 평가해 보시던가,라고 되묻고 싶었다.  죽어라 마셔댔던 포도색 깡쏘주와 함께했던 수많은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저커버그 형이 앞장서서, ‘누구야 초이 괴롭힌 거.  걸리면 다 죽을 줄 알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이 정도면 형님이었다.  큰 형님!

삽질이란 건 없다

이베이에서의 2점짜리 경험은 그 ‘무대 뒤’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충이 무엇인지 나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쓴 신의 시나리오였으리라.  돌이켜보면, 이베이 입사 전까지 나는 주로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작은 일’들은 직원 또는 남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밭일은 하찮게 보이지만 중요해,라고 해봤자 귓등으로 들었을 나를 정확히 파악한 대지와 곡물의 신 데메테르가 나를 아예 밭 한가운데로 던져버린 것이다.  거기서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밭 능선을 따라 무 옆 잡초를 정성 들여 솎고, 끊어질듯한 허리를 부여잡고 똥내 나는 잔치국수로 참을 때우고, 저녁 일찍 곯아떨어지는 삶을 직접 살아본 것이다.  당장은 새까맣게 타버린 피부 외에 아무것도 얻는 게 없는 삽질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한 번은 겪었어야 할 중요한 경험이었다.

‘무대 뒤 작은 일’의 중요함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영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일이 실제 가치에 비해 얼마나 소외되는지 포도색 깡쏘주를 퍼마시며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그 영웅들을 진심으로 고마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렴풋이 동감할 수 있게 되었고, 동감한다는 나의 말이 그들에게 사탕발림이 아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또 중요한 무대 위/옆/앞/뒤 일들을 함께 조금이나마 더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한다고 까불던 startup 시절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사고의 한 부분이 조금이나마 메워졌다.

진정한 삽질이란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베이에서의 삽질이 없었다면 그런 일의 중요함도, 영웅들의 존재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고마워할 줄 몰랐을 것이다.  저커버그의 한 마디에, 왜 저런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을까,라고 잘난 체하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해봐도 정말 재수 없는 놈이 되어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진정한 삽질이란 없다.  다만 그 가치를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시다바리여서 다행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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