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고백 (1): “내 스타일대로 해”

얼마 전 링크드인(linkedin.com)을 서핑하던 와중에 재미있는 한국의 한 중견 기업 구인 광고를 봤다.  부장급 자리다.  신기해서 스크린을 캡처를 해 놓았지만 익명성(?)을 위해 눈길을 끌었던 부분을 아래와 같이 직접 옮겨보았다.

필요 사항
– 온화하고 겸손하며 합리적인 성품과 리더십
– 부서 간 조율 능력 및 경청
– 그룹 조직 및 관계사 간 소통 능력

온화하고 겸손하며 합리적이어야 한다니.  경청해야 한다니!

면접관: “지원자께서 겸손하다는 사례를 설명해주세요.”

지원자: “이 자리는 부족한 저에게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 “네, 합격.”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최부장은 너무 성격이 온화하지 않아!! 어떻게 된 거야!!!”라고 막 욕먹는 모습이 그려졌다.  반대 의견을 내면, 사장님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다고 하겠지.

물론 실제로 그런 회사인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겸손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모여 상대방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훌륭한 회사일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지 맞다,라는 것을 구인 광고에까지 명시해놨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윗사람이 원하는 스타일로 일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그것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일지라 하더라도—바로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고 해석하면 너무 오버인가.  획일적인 방식, 의례 해왔던 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분위기.  신입 사원도 아니고 부장급인데.

교복을 입어야 모범 학생이고 평상복을 입으면 날라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도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그런데 실은 내가 제일 그런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나 스스로도 “일은 이렇게 해야 맞아”라는 류의 편견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매일 그런다.

얼마 전 새로 온 직원이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과 더 잘해야 할 것에 대해 피드백을 달라고 했다.  우리 팀에 조인한 지 겨우 2주 만의 일이다.  지금까지 잘해온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부분에서, ‘1:1 미팅을 잡거나 공동 채팅장 개설처럼 준비 작업이 필요 없는 일은 망설이지 말고 얘기가 나온 즉시 바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시작하려다가 나의 꼰대력에 깜짝 놀라 헛기침으로 간신히 막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보니까 제 생각에는… (흠칫)… 앜 콜록 어헛…”

“앗, 괜찮으세요?”

준비 작업이 필요 없는 일은 망설이지 말고 즉시 한다,는 내 일하는 스타일을 남에게 강요한 순간이다.  어차피 그것들이 필요하기 전까지만 되어 있으면 될 것을, 다른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하느라 가벼운 일은 뒤로 미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저 나의 잣대와 스타일만을 강요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아차차, 하고 뒤로 물러선 후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은 2주 간 관찰해 보니 준비 작업이 필요 없는 일도 시간을 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찰일 뿐, 그리고 저와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일 뿐, 당장 고쳐야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스타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니까요.  다만 아직은 2주밖에 안돼 딱히 ‘결과’라고 할 만한 것을 목표했던 것이 아니니, 지금 당장은 피드백이 없어요.  앞으로 좀 더 결과들이 나오면 그것에 비추어 계속 피드백 줄게요.

<피드백 주는 법>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피드백이 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왜’ 그런 건지 분명해야 한다.  스타일 자체만을 탓할 수 없다.  그 스타일이 빚어낸 결과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

물론 신입이냐 경력이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고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점은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임팩트를 냈는가에 있어야 한다.

(Image Source – 아율, 아연 아빠의 스토리)

다른 스타일을 수용하자.

다양한 스타일을 수용하되 결과/임팩트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습관은 크게 세 가지의 장점이 있다.

1. 직원의 의욕이 생긴다.

자신의 스타일을 인정해주니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과 결과를 같이 보겠다고 하니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할 거면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저절로 생길 수 있다.  그렇게 계속 팀을, 상사를 놀라게 할 기회와 동기를 주면, 창의력도 끈기도 내가 직접적으로 강요할 때보다 훨씬 더 좋아진다.

2. 직원이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열의 일곱여덟은 그 직원의 계획대로 잘 안 된다.  상호 동의한 결과에 대해 나름대로 진행한 일이다 보니, 비로소 피드백을 줬을 때 직원 스스로가 납득하게 된다.  물론 직원의 성장을 위해 팀이나 회사를 희생할 수는 없으니 적절한 선에서 항상 체크하면서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그 논의마저도 내가 가르쳐주는 식이 아니라 최대한 직원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일을 잘 마칠 수 있도록 상담해주는 접근이어야 한다.

이렇게 상대방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논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마지막 장점 때문이다.

3. 나 역시 성장할 기회가 생긴다.

나와 다른 스타일의 직원이 예상외의 결과를 낼 때가 바로 나 역시 한 수 배우는 순간이다.  나의 선입견과,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 고 생각했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대부분 일을 할 때는 막판까지 미루지 말고 착실히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Adam Grant의 <Originals>를 보면, 막판에 몰아서 하기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략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마틴 루터 킹이 procrastination (질질 끌기)의 마스터였다니!  그 유명한 “I have a dream”이라는 말은 실은 스크립트 상에 없었다고 한다.  단상에 올라갈 때 뒤에서 “당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줘요!”라고 소리친 Mahalia Jackson에게 영감을 받아 즉석에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일을 미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략적으로 어느 정도 막판까지 여지를 남겨두다 보면 창의적인 사고가 떠오르거나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계획대로 진행하는 경우 “계획”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않지만, 막판까지 미루면 계속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Originals>란 책을 읽은 후에는 미팅이나 발표 준비를 막판까지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보기도 했는데 아직까지 완전히 망한 적은 없다.


우리는 결과도 보지 않고, ‘응당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희한한 관습/관성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경험이 많으면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더 효과적인 방법을 더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스타일이 다르다고 방법이 무조건 ‘틀렸다’라고 할 수는 없다.

하던 대로만 하면 획기적인 방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새로운 스타일의 도전을 계속 받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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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타일의 도전을 받아주자 (Image Source – Cosmopol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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