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누워있네

꽃이 가득한 들판이 아름다워서 벌러덩 누웠더니 하늘만 보이고 사진을 찍었더니 향기가 깜짝 놀라 날아가 버리네 아쉬운 마음에 꽃 하나 꺾어 보니 입가의 주름 마냥 늘어져 버리네   이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에게 주었더니 간장 종지 닮은 손에 살짝 올려놓고 행여 바람에 꽃잎이 날릴까 행여 꽃잎이 바람을 타고 날아갈까 입가의 미소 마냥 살며시 걸어가네   지나다가 그 아이 혹시라도 만나거든 수줍은 더벅머리 길게 한 번 쓰다듬어주소 조물조물 눅눅해진 꽃잎은 손과 발이 서툴러 그런 것이오…

유쾌한 시

나는 유쾌한 시를 쓰고 싶다 매운 맛을 보면 얼굴이 빨개져서 유쾌한 길을 가다 넘어지면 땅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유쾌한 눈물이 나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어서 유쾌한 그것도 시냐,면 이건 노래요,라 할 수 있어 유쾌한 바로 그런 유쾌한 시를 쓰고 싶다

공부 I

누가 시간에 바지 좀 입혀줘 끄댕이 좀 잡게

이사 하는 날

막 이사 나온 아파트를 마지막으로 청소하러 잠시 왔다 텅 비어 있는 게 염하기 전에 발가벗겨진 노인 마냥 초라해 보인다 늘 그랬듯 애들 방이었던 곳부터 청소기를 들고 선다   자 이제 마지막 청소구나, 그동안 고마웠어,하고 말을 건네 본다 오랫동안 닿지 않았던 침대 밑이었던 구석까지 벅벅 밀어준다 집인지 청소기인지 나인지 우웅,하고 운다   울음의 끝에 그녀가 누워있다   뭐가 그리 편안타고 허연 얼굴로 누워있다 뭐가 그리 부끄럽다고 두…

겨울 가을 여름 봄

나무는 하얀 눈 덮인 세상에서 시작해서 앙상한 가지에 울긋불긋 단풍을 꽂아 장식하고 뜨거운 모닥불이 되어 통기타 젊은 선율에 이리저리 춤을 추다 새싹의 파란 기운을 머금고 겨울을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면 겨울이 덜 추웠을 것이다   사람은 인생사 통달한 노인으로 태어나서 시린 가슴은 노련함으로 달래고 그렇게 자식들을 키워내고 뜨거운 가슴으로 책을 읽고 땀 흘려 일하다 어린이가 되어 비로소 제멋대로 살았어야 했다 그러면 삶의 끝자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