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크리스마스

또 푹 빠졌다. 지난 책수감사절에 추기 시작한, 오랜만에 만난 한글 활자와의 강강술래는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계속 되었다.  사실 이번 연휴에는 미리 계획했던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행 틈틈이 책을 읽어댔다.  여행 틈틈이 술도 아니고 책이라니, 40년 넘는 인생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렇다고 술의 양이 줄어든 것도 아니니, 나름 ‘바쁜’ 여행이었군. 오가는 비행기…

피드백 주는 법

미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문화 중에 하나가 피드백 주고 받기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애비 애미도 없이 가차 없다.  최악의 타이밍은 생일 아침에 받은 피드백이었고, 최악의 내용은 PM (Product Manager)으로서의 자격이 없다,였다.  그걸 Engineering Director에게 들었다. PM으로 일하고 있는데 PM의 자격이 없다니.  원나잇 다음 날 아침, 당신은 남자의 자격이 없다,고 씌여 있는 쪽지를 읽는 기분보다…

가장 괴로운 5분

나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운동을 한다.  이것도 아내가 불평불만을 토로해서 그나마 늦춘 것이다.  원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운동을 했다.  그것도 일주일에 다섯 번이나. 물론 매일 아침 아이고 즐거워,하며 일어나는 건 아니다.  사실 그 반대다.  매일 아침이 알람의 snooze와 stop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며 시작된다.  Snooze 간격도 10분이면 너무 딱 맞아 떨어져 9분으로 맞춰놨다. 사실 영향력…

약점을 공개하다

아무리 남 눈치 안 보고 살아왔다고 말은 하지만, 솔직히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있다고. 특히 일할 때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가끔은 차가워 보여도 일처리만큼은 깔끔한 도시남.  그리고—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렸지만—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머리 속에 한 번쯤은 그려본 이미지이다. 이미지 메이킹이 많은 역할을 차지하는 이 곳에서 일하면서 더더욱 집착했다.  외국인 노동자라서 그랬으려나. 작은 실수라도…

삽질의 시작 – 노인 (1)

삽질의 시작 – 노인 (1) 삽질의 절정 – 담판 (2) 삽질의 완성 – 포옹 (3)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삽질 참 많이 하고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토끼를 닮은 생물 교생 선생님에게 데이트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면서 일본 고등학교 진학을 시도했던 일 (일본어로 된 주관식 시험지에 한글로 답을 썼다. 당연히 떨어졌다.), 한국 고등학교에서의 수많은 구타와 체벌…

새옹지마 #1

2012년 겨울이었다.  이듬해 계획을 짜던 중, 나의 보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당시 나의 보스는 프랑스 출신의 아름다운 금발 여인이었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  이름은 실비아라고 하자.  불란서 악센트가 촉촉하게 남아 있는, 절세미녀까지는 아니지만 만약 젊었더라면 반했을 것 같은, 그런 귀풍이 있으면서도 장난기 있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나에게 여러모로 은인이다. 이베이 초반, 다른 팀에서 낮은 레벨에 평가도…

질문의 힘 #1

보통 페이스북의 Product 조직은 PM (Product Manager) 한 명당 Engineer 대략 10명의 비율이다.  그리고 그 10명의 보스, 즉 EM (Engineering Manager)이 PM의 counterpart가 된다. 나의 파트너 EM은, 러시아에서 왔고, 표정 변화가 많지 않으며, 아주 단도직입적이다.  결혼해서 아이가 하나 있는데, 어떻게 결혼했냐,라고 물었더니 이런다. Well, I fxxxed her, it was good, so I got married to her….

책수감사절

푹 빠졌었다. 오랜만에 읽는 한글 책이라 눈에 쏙 들어왔다.  눈과 활자가 만나 손 붙잡고 강강술래를 추듯 신이 났다.  한 권을 읽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아무 책이나 찾아 또 읽었다.  올드보이 최민식이 15년 감금 생활에서 나오자마자 마주친 첫 사람, 오광록을 붙잡고 오감으로 빨아 느끼듯. 일주일 간의 추수감사절 휴가.  사정이 있어 여느 때완 달리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집에…

유쾌한 시

나는 유쾌한 시를 쓰고 싶다 매운 맛을 보면 얼굴이 빨개져서 유쾌한 길을 가다 넘어지면 땅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유쾌한 눈물이 나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어서 유쾌한 그것도 시냐,면 이건 노래요,라 할 수 있어 유쾌한 바로 그런 유쾌한 시를 쓰고 싶다

내가 니 시다바리다 (1)

내가 니 시다바리다 (1) 내가 니 시다바리다 (2) 내가 니 시다바리다 (3) 나는 PM이다. Product Manager의 약자다. 그게 뭐라면, 답이 길어진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미국에서 짧은 시간 (3년 반 정도) 관찰한 바, PM의 역할 및 정의는 회사마다, 팀마다, 보스마다, 아니면 시기마다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베이에서 처음 MBA 인턴으로서, 즉 난생 처음으로 미국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공부 I

누가 시간에 바지 좀 입혀줘 끄댕이 좀 잡게

이사 하는 날

막 이사 나온 아파트를 마지막으로 청소하러 잠시 왔다 텅 비어 있는 게 염하기 전에 발가벗겨진 노인 마냥 초라해 보인다 늘 그랬듯 애들 방이었던 곳부터 청소기를 들고 선다   자 이제 마지막 청소구나, 그동안 고마웠어,하고 말을 건네 본다 오랫동안 닿지 않았던 침대 밑이었던 구석까지 벅벅 밀어준다 집인지 청소기인지 나인지 우웅,하고 운다   울음의 끝에 그녀가 누워있다   뭐가 그리 편안타고 허연 얼굴로 누워있다 뭐가 그리 부끄럽다고 두…